목요일, 10월 31, 2013

박정희대통령의 10월 유신의 빛과 그림자





1969년 7월 25일 미국 닉슨 대통령의 Guam Doctrine은  북한과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던 한국에는 비상사태나 다름이 없는 선언 이였다.  미국은 우방을 지원은 하겠지만 모든 자유국가의 안보를 떠 맞지는 않을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미국이 핵우산은  제공하지만  자국의 안보는 자국이 지키라는 선언 이었다.  아시아의 문제는 아시안의 손에 맡긴다는 선언으로 미국이 비엩남 전쟁에서 손을 떼겠다는 묵시적인 폭탄 선언 이었다.한국 안보에 비상을 알리는 위기의 신호였다

1973년 미국은 파리에서 공산월맹과 다음과 같은 비밀평화협정을 체결한다.

1) 남비에트남과 북비에트남은 1973년 1/27에 휴전을 한다
2) 비에트남전 미군포로를 석방하며 60일 이내 미군은 철수한다
3) 비에트남은 자신들의 문제는 자신들이 책임진다.
4) 남북비에트남은 평화적으로 단계적인 통일을 한다

파리협정에 따라서 1973년 미군은 월남전으로부터 완전 철수했다. 미국은 공산월맹과의 평화협정에서 완전히 속았다. 평화협정 내용대로 하면 남북 비에트남은 전쟁을 종식하고 상호 평화적인 방법으로 합의에 의해 단계적인 통일을 지향했어야 한다, 그런데 미군이 철수하자 공산월맹은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휴전협정을 깨고 공격을 다시 시작했다.   미군이 철수한 후 극심한 부패와 분열, 오랜 비에트콩의 게릴라 공격으로 지친 월남 정부는 문자 그대로 난장판 이였다 . 민주화를 앞세워 학교 ,종교계 및  각 계 각 층에 잠복한 공산세력과 반정부세력은 합세하여 데모와 폭동으로  월남의 운명은 문자 그대로 풍전 등화였다.

명석한 박정희대통령의 안보감각에 비상등이 켜졌다.1949년 미국의 오판으로 한국에서 미군 철수를 한 직후  단군 이래 가장 비참한 참극을 불러온 북한의 무력 남침을 직접 경험한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이 다시 한반도에서 철수 할 것이라고 거의 확신을 하고 그렇게 되면 한반도는 또 다시 민족 상쟁의 참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중대 결심을 한다.  국내 정세는 경제 발전에 따른 어두운 그림자로 국민들의 욕구 불만과 반정부세력과 친북세력들의 합세로 연일 계속되는 데모로 혼돈스러웠고   1971년  2월 미군의 주력 부대인 7사단 병력 20000명이 한국에서 철수한다.  다급해진  박정희대통령은 당시 정보부장 이후락을 북한에 보내 김일성에게 상호 오판에 의한 불장난은 하지 말자고 제안하여 1972년 7월4일  남북 7.4  공동 성명을 이끌어낸다.   일단은 북한의 오판을 막은 것이다.   

국가비상 체제를 만들지 않으면 북한의 오판으로 한국이 위태로운 것은 물론 다시 민족 대참사가 난다는 것을 직감하고 마침내 1972년 10월 17일 유신체제를 선포하고 국민투표에 붙여 투표율 92.9% 찬성 91.5%의 압도적인 지지로 유신체제를 선포하고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비상조치를 취했던 것이다.미군이 철수한 월남은 공산화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 박정희대통령의 판단은 적중했다.  미국이 다시는 월남전에 계입 할 뜻이 없다는 뜻을 암암리에 확인한 공산월맹은 마침내 월남 전역에 총공격 명령을 내린다. 1975년 4월 30일 미군이 철수한 월남은 극심한 내분과  월맹이 숨겨놓은 공산당원들의 총공세로 인하여  공산 월맹에 항복을 한다, 북한의 김일성도 즉시 중국을 방문하여 기회가 온 것이 아닌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미군이 철수한 후에 월남 패망을 목격한 박정희 대통령은 월남 패망의 주요 원인을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변화로 인한 미군철수,  월남정부 각 계 각 층에 숨은 공산월맹 당원들의 반정부 활동으로  월남이 망했다고 확신하고 미군 철수에 대비한 국방력강화를 대차게 밀어 부친다, 이 때 핵무기 개발도 고려했던 것도  확실하다. 유신반대 반정부데모와 사상범에 대하여  강력하게 대처해 인권문제를 야기해서 해외에서 강한 비판을 받은 것도 이런 국내외 정치환경 속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인권 문제, 핵문제 등  미국과 마찰을 일으킨 것도 월남의 패망을  본 박정희대통령의  안보감각으로 미국과 대립한 것도 어두운 그림자가 만들어진 것도 이때였다. 

10월 유신선포 후 2달여 후에 월남은 박정희대통령이 예견한 대로 공산월맹에 의해 멸망한다.  그의 국가안보를 보는  명석한 판단력이 크게 돋보인다.      1971년 4월 27일  3선으로 당선된 박정희대통령은 유신선포 당시 임기가 3년 가까이 남았는데도    10월 유신을 선포한 것을 보아도 유신은 국내외 정세와 미군철수를 시작한 미국의 아시아 정책 변화를 감지한 박정희대통령이 체제안보 강화를 위한 중대 결단이었지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한 구상이 결코 아니 였다고  내가 믿는 이유가 바로 위에 언급한 당시의 년도별 국내외 정세를 분석한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1975년 2월 월남이 패망하기 두달 전에 유신 반대가 극심해지자 박정희대통령은 자신의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부친다. 투표율 79.8% 찬성 73.1 % 국민은 그를 신임했다 .

군 출신으로 북한의 6.25 남침을 경험했고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하면 제2의 한국전쟁이 날 것을 걱정하고 북한의 전략 전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위에 언급한 당시의 국내외 정세를 여러모로 분석하고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고뇌에 찬 나날을 보낸 후 자신의 무덤에 침을 뱉어도 좋다며 내린 결단이라고  본다. 

10월 유신은  빛과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국방력을 크게 강화하고  국력을 신장시킨 밝은 빛이 있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부 자유를 제한해야만 했던 어두움과 그때 희생한 사람들의 아픔도 있다.  그러나 그의 반대자들에 의해 박정희대통령의 순수하고 눈물겨운  사심 없는 나라 사랑이  어둠속에만 묻혀 버린 오늘의 세태가 너무 가슴이 아프다.




월요일, 10월 28, 2013

북한에 남북통일 협상을 제안하자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핵무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김정일 체제때 만해도 어느 정도 북한에 대하여 합리적인 설득과 경제적인 이익을 댓가로 대화를 계속하면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접을 수있는 작은 희망의 빛이 보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에서 북한에 핵무기 포기를 요구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숲에 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다.

북한의 주연배우가 바뀌였다. 동북아 주변 국가들의 북한정책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이제 북의 핵문제가 해결되는 방법은 북한이 스스로 붕괴하든가 남한이 북한을 흡수 통일을 하여 한반도 비핵화를 하든가 아니면 한국이 핵무장을 하여 남북이 핵무기 포기협상을 벌려 남북 모두가 함께 핵을 포기하는 길이다. 또 하나의 비상한 방법은 남북이 통일협상과 핵포기 협상을 동시에 시작하여 한반도 비핵화를하는 방법이다.

한국이 북한에 남북 통일협상을 제안하자 !! 한국이 북한보다 못 살던 시절에 한국이 남북통일 협상을 제안 하는 것은 바로 공산화의 길로 가는 것으로 말도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강력한 한미동맹으로 이루어지는 한국의 국력도 이제는 만만치않다. 경제력으로 보나 국제적인 위상을 보나 한미 합동군사력을 보나 모든 것이 북한을 압도하고 있다. 통일 후 한국의 현 위치에 미군의 영구주둔을 전제로 한국은 북한에 통일협상을 제안하자. 통일 후 미군이 북한에 진주하는 것은 중국의 군사적 신경을 자극할 염려도 있으나 현재의 한국내 위치에 미군이 영구 주둔 하는 것은 중국의 입장에서도 통일 전이나 통일 후나 마찬 가지라서 별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본다.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위치를 고려하면 통일 후에도 미군은 한반도에 더 강한 군사력으로 주둔해야 한다. 변화하는 아시아와 동북아 세력 판도를 보면 미국이라는 힘의 축이 한국에 굳게 버티고 있는 것은 현재와 미래 모두 미국의 국익을 위해 아주 아주 중요하다. 30년 ,50년 후에도 한반도에서 굳게 자리 잡은 미군의 강력한 힘의 축은 중국과, 러시아 , 군사대국으로 치닫는 일본을 견제하는 콘트럴 타우워 역할을 하면서 동북아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어 이지역 평화를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중국 일본 러시아도 한반도에서 미국의 힘이 큰 축으로 작용하며 세력균형을 이루어 주는 것이 한반도에서 3국의 첨예한 대립을 막아 주어서 동북아 안정에 큰 도움이 되고 결국 자신들의 국가 이익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해 할 것이다.

통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북한 주민을 세뇌해 온 북한의 지금까지의 모습으로 볼때 한국이 지금 통일협상을 제안했을때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통일협상이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이 뒷받침하고있는 지금 한국이 주도하는 남북 통일협상을 북한에 즉시 제안하자. 북한의 반응이 주목 된다.

검찰에게 중립을 지키라는 소리는 이상한 소리입니다

수사를 하는데 법조문 잣대만 가지고 법에 의한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피의자의 인권과 기본권이 보장 되는 누구에게나 공명정대한 수사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합리적인 요구라고 봅니다 . 정치적인 중립을 지키라는 말도 얼핏 들으면 그럴듯 한데 정권을 잡은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국정운영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과거 정권이 인신구속을 남발 했으면 가능하면 불구속으로 수사하는 것을 바란다든가 징역이나 금고형보다 벌금형을 확대하는 것이 자신의 법치의 철학이라고 믿는 새로운 통치권자가 집권했으면 검찰 책임자는 그의 법치철학이 헌법정신을 위배하지 않는한 그의 국정 철학과 맥을 갖이 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그래서 검찰에게 공정한 검찰이 되라고 요구 할 수는 있어도 중립을 지키라는 말은 합리적인 표현이 아니라고 봅니다. 법의 수사에는 중립은 없기 때문입니다. 명맥한 증거를 가지고 합리적인 법리 해석에의한 공정한 수사만 있을 따름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검찰을 떠난 검사님 여러분들 자신들이 재직중 기소한 사건이 과연 합리적이고 사심 없이 법리 해석을했던 공정한 기소였을까요? 자신의 명예만을 위해 자신의 틀에 짜 맞춘 엮어 넣기 식 수사는 없었는지 자신을 뒤돌아 보며 반성하는 것은 자신을 키우고 국가의 법치를 업그래이드 하는 명약 입니다